기후변화 예방 · 안정적 전력 공급 위해 원전 안전설비 확대

  ▲ 보령화력발전소 전경. 석탄 발전소는 원자력에 비해 10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방출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비중을 줄여나가는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 프라임경북뉴스


사상 최고의 더위, 최장 열대야, 전력부족 사태가 겹친 올 여름, 국민들은 일기예보를 보며 전력예비율 걱정을 해야 했다. 대부분의 가정에 가전제품 풀세트를 갖추고 사는 물질풍요의 시대에 살면서 그것들을 돌릴 수 있는 전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모르거나 외면했던 발전소 건설과 운영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관심을 갖게 했다.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재연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5월말 시험성적서 위조 때문에 신월성1호기를 비롯한 원전 3기가 정지했다. 전력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는 여름을 앞둔 시점에서 전력 비상사태는 불보듯 뻔했다. 무더위가 닥치자 국가 전체가 허리띠 졸라매듯 전기 다이어트를 해야했다. 
 
원전 3기 정지로 대한민국 전력사정이 비상사태를 방불케 했다면 일본은 어떻게  된 건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일본은 무려 50기의 원전을 정지했다. 의무절전 및 자율절전 노력이 뒤따랐지만 50기 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던 일본의 전력상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원전 정지후 원자력 발전량을 가스와 석유 발전으로 대체하였다. 2012년석유소비량이 2010년 대비 218.9% 증가하고 가스소비량은 39.4% 늘어났다. 화석연료 수입증가로 일본은 31년만에 무역적자국이 되었다.
 
석유와 가스 소비가 많이 늘었지만 일본 전력사정이 크게 나빠지지 않은 것은 일본의 전력설비예비율 때문이었다. 일본의 원전 발전 비율은 30%선. 전력설비예비율이 28.3%여서 원자력발전소를 다 정지해도 전기소비를 조금만 줄이면 전력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 
 
한국의 전력설비예비율은 6.7%. 사회기반시설 측면으로 보면 일본은 역시 선진국이고 한국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세계에서 가장 발빠르게 탈원전 정책을 내놓은 독일의 경우 전력설비예비율이 82.6%이다. 우리가 감히 넘보지 못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동안 숨가쁘게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전력공급 측면의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전력사정이 좋아지고 값싼 전기 공급으로 산업경쟁력이 높아졌지만 선진국 같은 여력은 없다.
 
우리나라의 전력예비율은 전력소비 피크시점 기준으로 5%를 오르내린다. 공공기관들이 에어컨에다가 전등까지 모두 끄고, 산업체에 공장 적게 돌리는 비용을 보조금으로 보전해주면서 관리한 결과가 이 정도이다. 선진국과 격차가 매우 크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전력수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전소를 더 지어 예비설비율을 높이는 게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한다. 전력관련 국가기반시설 확충이 시급하다. 절전 홍보 등을 통한 수요관리는 한계가 있다.
 
일부 탈핵 환경운동가들은 “세계의 에너지정책은 탈핵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원자력 비중을 줄이고 탈핵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재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총 30개국. 이 가운데 장기적으로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국가는 원전 비중이 낮은 독일과 스위스 등 일부국가뿐이다. 독일(원전 9기)은 2022년까지, 스위스(원전 5기)는 2034년까지 원전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지만 대부분의 원전 운영 국가들은 원전 비중을 조절하며 원전 정책을 유지 또는 확대하고 있다. 원전을 새로 지어 원전운영국에 편입하려는 국가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세계 에너지정책의 추세를 한마디로 말하면 ‘탈원전이 아니라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에너지는 인류가 눈부신 산업화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부산물로 지구온난화를 촉진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권에 쌓아놓았다.  
 
화석에너지 중 전기를 생산하는데 세계 각국의 기저전력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석탄이다. 석유나 가스는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발생이 석탄에 비해 적지만 연료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전기가 부족할 때만 전기 생산 연료로 활용된다. 석탄의 이산화탄소 발생은 원자력에너지의 100배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이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는 세계인 모두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심각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0년 이후 여름은 10.3일 길어지고 겨울은 14일 짧아졌다. 거기다가 여름 더위뿐 아니라 겨울 추위까지 심해지는 기후변화가 심각하다.
 
전력수급 방법을 결정하는 에너지정책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저탄소중심 정책은 인류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
 
UN 산하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IPCC)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온도 상승을 2℃ 이내로 안정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0%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오는 2020년이 중기 감축목표해이며 이에 맞춰 세계 각국은 탄소절감 정책을 내놓고 있다. EU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보다 20%, 일본은 25%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30%수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 한국원전 기술로 건설중인 uae 바라카원전    ⓒ 프라임경북뉴스

이를 위해서는 전력생산에서 화석에너지 비율을 줄이는 정책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2012년 청정에너지기준법(Clean Energy Standard Act of 2012)을 제정, 2035년까지 청정에너지원 발전 비중을 8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청정에너지는 재생에너지, 원자력, 고효율 천연가스, 탄소포집과 저장이행을 전제로 한 석탄을 말한다. 미국은 청정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육상과 해상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승인하고 신규원전 건설을 허가했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원자력 유지 또는 비중 확대에 중심을 두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 세계가 원자력 발전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게 되었지만 공포감이 잦아든 후 냉정한 현실을 바탕으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국가 정책결정자들은 안전장치를 대폭 강화해 원전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잡아나가고 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를 포함한 다양한 비상상황에서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시설을 추가하는 계기가 돼 전세계 원전 안정성 향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2년 2월 34년만에 처음으로 신규 원전 건설을 허가했다. 1979년 스리마일섬(TMI) 원전사고(노심용융 사고였지만 외부 방사능 유출은 없었음) 이후 원전 추가건설을 하지 않고 원전 유지만 해왔던 미국이 원전 확대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미 조지아주 보글(Vogtle) 원전 3,4호기는 오는 2017년과 2018년 각각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미국 내 신규원전 인허가 신청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리(Lee)원전 2기 등 모두 14기에 달해 원전 건설분위기가 활발하다.
 
영국은 ‘저탄소 경제 정책’과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중점을 두고 원자력 역할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래된 화력발전소 폐쇄를 대비해 2030년까지 16GW 규모의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1년 현재 19%인 영국의 원자력비중은 오는 2030년 40%로 늘어날 전망이다.
 
러시아는 현재 원전 11기를(9.3GW) 추가 건설하는 등 오는 2025년까지 원전비중을 현재 10%에서 25%로 확대할 계획이며, 중국은 28기(용량 27.8GW)의 원전을 건설하는 등 원전 확대에 에너지 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 
  
석유가 풍부한 중동지역 국가들도 원전 국가로 새로 진입하거나 원전 비중을 늘리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먼저 원전 건설을 승인한 국가이다. 우리나라가 원전 건설을 수주해 오는 2020년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인 바라카 원전 1~4기를 준공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16기의 원자로와 관련 전력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며, 이란은 지난 2월 신규원전 후보지 16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터키는 아쿠유 지역에 1호 원전을 건설중이며 시놉 지역에 2호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외에 최근 박근혜대통령이 베트남 방문에서 양국의 원전 건설 협력을 논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베트남은 원전 추진 정책에 적극적이다. 앞으로 10.7GW 규모의 원전 10기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1차 러시아, 2차 일본에 이어 3차 원전건설에 한국원전 수출이 유력하다는 평이다.
 
또 방글라데시, 요르단, 이집트 등에서 새로 원전 건설이 추진중이거나 사업자 선정을 위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전세계에서 건설중인 원전은 13개국 68기이며, 건설계획은 26개국 162기에 달한다.
 
 
독일은 오는 2022년까지 원전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블룸버그 마켓 매거진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근 프랑스, 네덜란드에 비해 약 40% 비싸고 재생에너지를 발전에 대한 차액 부담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약 1.4조유로(약 2천조원)의 비용이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 세계가 탈원전을 목표로 한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책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야당뿐 아니라 산업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지난 9월1일 TV토론에서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 페어 쉬타인브뤼크(Peer Steinbrueck)은 “메르켈 총리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은 한마디로 실패작”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독일 소비자와 산업전반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도 밝혔다. 에너지 체제 개편이 주요 정치쟁점이 되고 있으며, 해외에 공장을 새로 짓겠다는 기업도 늘고 있다.
 
또 바이에른주 마르틴 자일(Martin Zeil) 경제장관은 원전 대체설비 부족으로 인해 전력수급 차질을 예상했다. 앞으로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인접국가의 원자력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입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에너지 정책의 큰 줄기는 세계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비중 상승과 화석에너지 비중 감소에 있었다.
 
신재생에너지는 꾸준히 기술력과 경제성을 높이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단가(39.6원)에 비해 풍력 160.8원, 태양광 400원 내외로 4배~10배 정도 비싸다. 더구나 하루 24시간 전기를 생산하는 기저전력원(석탄, 원자력)에 비해 이용률(20%내외)이 매우 낮다는 문제도 있다. 바람이 불거나 햇빛이 있어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한계 때문에 국가 전력수급계획으로 적극 반영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전기생산의 연료가 되는 1차 에너지를 96.5%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안보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유연탄이나 LNG는 15~20일치 밖에 비축할 수 없기 때문에 수입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전기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원자력의 경우 18개월분의 농축우라늄을 저장할 수 있고 장전된 연료까지 감안하면 3년정도 발전이 가능하다. 
 
전력수급 비상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추가 건설을 통한 전력공급력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가 전력수급 정책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국토조건, 자원 수입의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원자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또 해외수출을 통해 원전 산업을 국내시장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발전원으로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경희대 정범진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원자력 발전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확실히 장점이 가장 많은 발전원”이라며 “국민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한다면  원자력에 인적 투자와 기술적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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